<번지점프를 하다>는 임권택 감독의 조연출로 일했던 김대승감독의 입봉작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기하나론 거를 수 없는 이병헌과 영화 <송어>에 출연하여 적은 분량이지만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카이스트에서 스타덤에 오른 이은주 주연의 영화이다. 영화 초반에는 풋풋한 대학생들의 로맨스 영화로 흘러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게 흘러간다. 현대에서는 쉽게 소재가 되지만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영화적으로 충격을 주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명작이 되었다.
1.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줄거리, 스포주의)
1983년 비가 엄청 내리던 어느날 대학생 인우(이병헌)는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이은주)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인우는 태희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 뒤로 한동안 그녀를 볼 수 없어서 낙담하고 있던 차에 같은 학교 조소과에 재학 중인 태희를 다시 만나며 그때부터 열정적으로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국문과인 인우는 자신의 전공수업에서 낙제를 받을정도로 공부보단 태희를 쫓아다녔고 학과 MT에서도 태희의 조소과 MT를 따라다닐 정도로 열성을 보여 결국 둘은 연인이 된다. 태희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거라며 자신의 얼굴을 직접 새겨 넣은 라이터를 선물로 주고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사람이 좋다는 말에 인우는 안 피던 담배도 피우게 되고 서로 싸우는 날도 있지만 서로의 진심 어린 애정을 확인하기도 한다.
인우는 태희와 연인이 되기전 충동적으로 넣어버린 입영신청 때문에 군대에 가게 되고 인우의 입대날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하였지만 태희가 나오지 않아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인우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결혼도 하여 아내(전미선)와 딸도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담임을 맡고 있는 같은 반에 임현빈(여현수)이란 학생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첫 수업에서 "사랑은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래"라는 예전에 태희가 해주었던 말을 시작으로 인우는 현수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과거 인우가 태희를 다시 만난날 인우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태희에게 물건을 들 때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마법을 걸었다고 실없는 농담을 했다. 현빈도 물건을 손에 쥐면 새끼손가락을 피는 버릇이 있다. 우연히 담임학급에 들려 체육수업을 나간 학생들의 교실을 들려보던 중 현빈의 벨소리가 태희가 좋아하던 음악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었다.
어느 날수업 중 인우는 태희에게 들었던 질문을 현빈에게 똑같이 받게 된다. "근데 왜 숟가락은 ㄷ받침인가요?" 태희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인우는 점점 마음에 동요가 찾아온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고 아내에게 농담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곤 한다. 그리고 현빈이 좋아하는 혜주(홍수현)라는 학생에게도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자신의 혼란을 정리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환생한 태희라고도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일은 없다고 모든 게 우연이라며 자신을 마음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수업을 진행하던 중 인우는 현빈이 수업 중에 몰래 그린 태희의 모습을 보며 무너지게 된다. 현빈은 혜주와 데이트 도중 좌판에서 라이터를 사게 되는데 그 라이터는 태희가 인우에게 선물해 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라이터였다. 인우는 낯설지 않다고 느껴진다며 마치 아는 사람인 것 같다고 라이터를 사게 되고 인우에게 라이터 마저 들키게 된다.
이일로 인해 학교에는 인우가 남학생을 좋아하고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현빈에게서 수많은 태희의 모습과 추억들을 볼 수 있었던 인우는 괴로워한다. 현빈 또한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에 학교를 나오기가 힘들게 되었다. 결국 학교엔 대자보가 붙게 되었고 인우는 학교를 떠났으며 아내마저 사실을 알게 되어 모든 상황이 엉망이 되었다.
인우는 태희와 만나기로 한 용산역에서 멍하니 앉아 태희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현빈은 수업도중 라이터를 바라보며 무언가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태희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들이었다. 사실 태희 또한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인우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어 일부러 인우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인우의 입대전날 늦더라도 기다리라는 말에 인우는 하염없이 태희를 기다렸고 사실 태희는 인우를 배웅하기 위해 용산역으로 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현빈은 인우를 만나기 위해 수업 중에 뛰쳐나갔고 그동안 현빈도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인우와 태희는 다시 만나기로 했던 용산역에서 재회했다. 현빈 또한 자신이 태희의 환생임을 알게 되었고 둘은 늦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며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생전 태희가 가고 싶어 하던 뉴질랜드로 떠난 둘은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곳에서 다시 둘만의 추억을 쌓아가고 태희가 말했던 것처럼 다리 위 번지점프대에서 줄 없이 손을 잡고 뛰어내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태희 : 이번엔 여자로 태어나야지 인우 : 근데, 나도 여자로 태어나면 어쩌지? 태희 : 그럼. 또 사랑해야지 뭐 |
2. 다시 태어나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하며
당시엔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동성애 코드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단순히 동성애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픈 영화였다. 껍데기만 남자일 뿐 여전히 서로를 많이 그리워했고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은 진실된 사랑을 갖기 위해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 모습에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는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 지만 이 영화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태희와 인우, 현빈이 아니라 인우와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은 부인(전미선)이었고 현빈이 그렇게 쫓아다녔지만 결국엔 버림받은 혜주(홍수현)였다. 이런 작은 배역들의 열연 덕분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의 만남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수 있어 영화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
이은주 배우는 이 역할을 매우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었는데 시나리오를 읽을땐 자신의 배역이 중간에 왜 죽는지에 대해 어리둥절 했다가 다 읽고나선 가슴이 뭉클해져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전 작품에서 표독스럽고 차가운 역활을 해서 이미지가 생겨 버렸는데 이 작품을 발랄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하늘의 별이 된 이은주 배우의 작품이라거나 동성애 코드를 사용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서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들의 보여준 연기와 영화 속 캐릭터들이 세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사랑받을 만큼 놀라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필자도 이 영화를 지금까지 6번 정도 본 것 같은데 그때마다 이은주 배우의 안타까움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닌 영화 속 태희가 보고 싶고 인우와 현수의 두 캐릭터가 서로를 바라보는 애절함이 생각나서 찾아본다. 이 처럼 배우들의 본모습을 지우고 영화속 완벽한 캐릭터화되고 좋은 시나리오가 만났을 때 만들어진 영화를 우린 명작이라 부른다 생각한다.
애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보단 좀 더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야기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꼭 한번 보시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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