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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영화 이야기

8. 살고 싶었다. 누구보다 잘나가게 <1997, 초록물고기>

by 태정태세종부세 2024. 4. 12.

1997년 개봉 한국영화 초록물고기 이창동감독 한석규&#44; 심혜진&#44; 문성근 주연
초록물고기는 한국영화계의 거장 이창동감독의 데뷔작이다.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인 <초록 물고기>는 당시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기술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옛날영화임에도 시나리오의 자연스러운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는 현재에도 교본으로 쓰일 정도이다. 이후 이창동감독 작품들도 하나하나 빠질 것이 없는데 러프하게 그려낸 화면에서 뿜어 나오는 사실성은 정말 영화에 흠뻑 빠져들게 하며 인물들이 실제 옆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든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지금은 한국형 누아르란 장르가 많이 생겨났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그릴 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다. 

 

 

 

1. 사랑도 하고싶고, 제대로 살고도 싶고 단 하나의 꿈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

군대를 갓 제대한 막동(한석규)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답답한 마음에 기차밖의 풍경을 보다 앞쪽칸에 자신처럼 기차에 기대어 있는 미애(심혜진)를 보며 묘하게 빠져든다. 바람에 날려온 미애의 스카프를 잡은 막동은 스카프를 미애에게 전해주기 위해 앞칸으로 다가가고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미애를 구해주려다 집단린치를 당한다.(이문식배우의 단역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막동은 가방에 가지고있던 상패를 손에 쥐고 역에서 내려 양아치의 뒤통수를 때린 후 도망가버린다. 열차를 쫓아가지만 결국 열차를 놓치고 막동은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온다. 뇌성마비인 첫째 형과 트럭행상을 하는 셋째 형 알코올중독경찰관인 둘째 형 그리고 공장에 일한다고 속이고 다방레지를 하는 막냇동생이 있지만 이들은 서로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다. 그런 막동의 꿈은 전역 후 어떻게 하던 성공 하여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작은 식당하나 운영하며 옛날처럼 오손도손 모여사는 꿈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한다.

 

막동은 셋째형을 만나고 온사이 여자에게서 자신을 찾는 전화가 왔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영등포 나이트클럽으로 간다. 미애의 전화인 줄 알았던 막동은 스카프를 돌려주기 위해 클럽 안으로 들어가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애를 발견한다. 미애와 마주치기 위해 기다리다 나이트클럽사장이자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배태곤(문성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미애를 보곤 도와주려 한다. 그러다가 태곤의 부하인 판수(송강호)에게 얻어터지고 반항할 힘이 없는 막동은 자리를 피한다.

 

뒤따라 오는 태곤의 차안에 미애는 막동을 차에 타라 하며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태곤은 막동에게 무얼 하며 먹고 살 거냐고 묻고 막동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하자 태곤은 젊은 놈이 왜 그렇게 사냐며 주차장 보조원 자리를 소개해 준다.

 

주차보조원으로 일을하다 막동은 판수와 다시 시비가 붙고 얻어터진다. 막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각목으로 판수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막동의 깡다구를 본 부두목은 태곤에게 보고를 하고 태곤은 막동에게 돈을 주며 재개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오사장을 처리해 보라 지시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오사장에게 폭행혐의를 뒤짚어 씌우고 일을 처리하자 태곤은 막동을 부하직원으로 인정해 준다. 

 

본격적으로 태곤의 밑에서 일하는 막동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애가 취객에 의해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도와준다. 미애는 자신을 지배하려는 태곤보다 순수하고 순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막동에게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되고 막동또한 그런 미애에게 조금씩 마음을 갖게 된다. 둘은 태곤의 눈을 피해 열차에 오르지만 태곤에게 벗어나긴 쉽지 않다.

 

그때쯤 태곤이 형님으로 모시고 있던 김양길(명계남)이 출소하고 태곤을 찾아와 태곤의 구역에서 영업을 할것을 선언한다.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태곤은 그동안 쌓아놓은 인맥으로 양길을 견제하려 하지만 쉽지 않고 태곤의 부하였던 판수 또한 태곤을 배신하고 그의 차를 습격하여 위협을 가하는 등 태곤의 힘이 점점 줄어든다.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김양길에게 굴욕을 당한 태곤은 그를 제거하려하고 그 일에 막동을 쓰려한다. 막동은 태곤의 부탁아래 김양길의 나이트에 들어가기 전 미애와 첫 만남을 이루어 주게 한 스카프를 불에 태우며 둘 사이의 관계를 끊어내려 마음먹고 화장실에서 마주친 양길을 칼로 살해한다. 

 

사람으로서 넘어야할 선을 넘어버린 자신에게 충격을 받은 나머지 순수했던 막동의 멘털은 산산조각이 나고 화장실에 흩뿌려진 피를 물로 씻으며 울부짖는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막동은 무섭고 눈물이 난다. 공중전화기를 찾아 집으로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은 큰형에게 어릴 적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추억을 얘기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 큰성이야? 큰성, 나야, 막동이. 엄마는? 엄마 어디갔어? 으... 어? 나? 나 잘 있어. 괜찮아, 흐흐 큰성, 전화 끊지 마. 전화끊지마... 
큰성! 큰성, 생각나? 빨간 다리... 빨간색 철교. 우리 어렸을 때 빨간 다리 밑으로 물고기 잡으러 많이 다녔었짢아. 내가 저 언젠가 초록색 나는 물고기 잡는다고 그러다가 쓰레빠 잃어버려 가지구, 큰성이랑 형들이랑은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쓰레빠 찾으러 다녔었잖아. 순옥이 그 병신은 벌에 엉덩이 쏘여자기고 , 엉덩이 세 개 됐다고 둘째 형이 놀리고 그랬었잖아. 큰성, 그때 생각나? 그때 생각나?

 

막동은 태곤을 다시 만나고 불안해 하는 막동을 위로해 주는 척하며 태곤은 배에 칼을 꽂는다. 쓰러진 막동을 뒤로하고 유유히 사라진 태곤이 차에 오르는데 쓰러진 줄 알았던 막둥이 비틀비틀 대며 태곤의 차 보닛위에 쓰러진다. 차 안에는 태곤과 미애가 있었고 말 한마디 못하는 막동의 눈과 꺼져가는 숨소리를 지켜본다. 태곤은 이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미애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그렇게 막동은 마지막 숨을 거둔다.

 

시간이 한참 지난뒤 막동의 소원대로 가족들은 '큰 나무집'이라는 식당을 열고 같이 모여 밥도 먹고 장사를 하며 생활한다. 차 한 대가 지나가다 식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태곤과 태곤의 아이를 임신한 미애가 들어온다. 닭백숙을 시키자 셋째 형이 토종닭을 바로 잡아서 내어준다 하고 셋째 형이 닭을 놓치자 구경하던 태곤과 가족들이 닭을 잡기 위해 웃으며 마당을 뛰어다닌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미애는 익숙한 듯한 식당의 모습에 자신의 가방을 뒤져보고 언젠가 막동이 자신에게 준 가족사진을 보며 오열한다. 태곤은 둘째 형을 보고 언젠가 본 적이 있냐고 묻지만 끝내 막동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2. 문학적 가치, 한국형 누아르, 기념비적인 작품

일산 신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과거와 미래가 혼재하는 도시에 막동을 투영시켜 흔들리고 갈 곳 잃은 청년의 삶을 그려낸다. 막둥이 내린 대화역은 조금만 나가면 높은 건물과 아파트들이 즐비한 신도시이지만 막동의 집은 여전히 시골이고 신도시가 되어 없어져 버린 자신의 추억들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깡다구 하나만으로 태곤의 밑으로 들어가 몸을 사리지 않는 것도 성공해서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한 것이고 김양길을 죽이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큰형에게 전화한 이유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막동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야기로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도 했고 보스에게 인정도 받지만 결국은 배신당하며 끝내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자신이 죽고 나서야 이루어지는 아이러니함을 잘 그려내었고 압권은 동생을 죽인 사람과 가족들이 웃으면서 닭을 쫓는 장면이었다. 비극적이지만 현실은 이렇다 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어 주었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 물고기>를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였고 이후 작품에서도 여전히 거울처럼 현실을 냉혹하게 비춰준다. 러프하게 그려내는 미장센 또한 이창동 감독의 특징이다. 시간이 지나도 명작은 명작이니 안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권해 드린다.

 

3. 초록 물고기를 마치며

모든 영화가 그렇든 리뷰를 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영화일수록 부담이 더하고 특히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초록 물고기> 편은 더욱더 힘들었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가져와 영화를 수식한다 해도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좋은 영화니까 한번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정도이다. 막동의 꼭 잡고 싶었고 소중했던 초록 물고기처럼 필자와 독자들에게도 소중한 추억들이 떠오르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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