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로 소위 대박을 친 허진호 감독의 2번째 연출작인 이 영화는 연인의 사이를 아주 담백하고 매우 사실적이게 그려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대사와 장면들이 있는데 그만큼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감이 시간과 세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통용된다는 것이다. 백설희 님, 장사익 님과 김윤아 님의 영화 OST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노래가 되었다. 오늘은 한국 멜로영계의 대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알아보겠다.
1.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스며드는 사랑 그리고 사람 (짧은 줄거리, 스포주의)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는 상우(유지태)는 지역 라디오에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여 들려주는 프로그램의 일을 맡게된다. 일의 의뢰를 맡긴 PD이자 DJ도 같이 진행하는 은수(이영애)를 만나고 까칠한 그녀와 첫 만남에 바짝 긴장해 있던 상우는 은수와 함께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첫 만남과 달리 직선적이고 솔직한 그녀가 내내 신경이 쓰이고 은수 또한 순박하고 잘생긴 상우가 기억에 남는다. 비가 내리던 날 은수는 괜스레 생각이나 전화를 걸어 일에 관해 얘기하며 말 한번 더 붙여보고 상우도 그렇게 전화가 끝나고 난 뒤 은수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풍경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산사로 향한 둘은 의도치않게 하루 더 묵게 되고 은수가 잠든 사이 일을 하고 있는 상우의 모습을 보며 은수는 상우가 마음에 들었고 일을 마친 뒤 은수는 직접 얘기한다.
" 라면 먹을래요? "
라면을 끓이는 짧은 과정동안 은수는 한번 더 질문을 한다.
" 자고 갈래요? "
이렇게 직설적으로 던지는 그녀앞에서 순순히 따라가는 상우는 마냥 웃기만 하고 둘은 하룻밤을 보낸다. 순수했던 상우는 은수에게 빠져버렸고 순진하고 순정 어린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은수는 사실 한번 결혼 후 이혼한 경험이 있었는데 자신을 순진한 얼굴로 바라봐주는 상우의 눈빛에 반해 버렸다.
둘은 녹음을 위해 함께 다니며 소소한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했고 상우는 새벽에 택시를 타고 은수를 보러 갈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방법을 모르는 상우는 그저 있는 그대로 마음을 표현하였고 은수는 매우 노련하게 그런 상우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우의 아버지는 상우에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한번 데려와 보라며 얘기하고 상우는 은수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결혼에 관해 생각하였다. 은수를 만나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고 은수는 애써 회피하였다. 이 대화 이후 은수는 상우가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고 둘의 마음은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아무 말 없이 상우를 조금씩 밀어내는 은수와 그런 은수에게 조금 서운해지려는 상우, 둘은 더 이상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웃지 않는다.
자신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온 음악평론가에게 흔들리기 시작한 은수는 상우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안기지만 조금씩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은수는 상우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무너짐을 알게되고 작은 다툼이 있던 날 아무 말 없이 상우의 짐을 정리한 채 돌아선다.
상우는 속상한 자신을 달래며 슬퍼하지만 기다려본다. 은수는 상우에 대한 일말의 그리움을 상우를 찾아 오고 상우에게 조금 시간을 갖자고 이야기한다. 상우는 그런 그녀에게 서운함 보단 여전히 은수를 사랑하기에 전화를 걸어본다. 은수의 차가운 목소리에 찾아가게 되고 은수는 헤어짐을 얘기한다.
" 우리 헤어지자 "
" 내가 잘할게 "
" 헤어져 "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래 헤어지자 "
상우는 은수에 대한 남은 사랑과 미련때문에 괴로워한다. 술을 먹고 찾아가기도 하고 오지 않는 은수의 전화를 기다리며 울기도 한다. 집 앞을 찾아가 아파트 베란다로 보이는 은수를 몰래 보기도 하고 출근하는 은수를 기다리며 차에서 밤을 새워보기도 한다. 은수는 그런 상우가 버겁기만 하고 상우가 없어도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상우는 은수를 미행하다 다른 남자와 함께 여행온 모습을 보게되며 홧김에 은수의 차를 긁어버리지만 이내 은수에게 들켜 자잘하게 도망치듯 은수와 헤어진다.
시간이 지나고 은수는 음악평론가와도 잘 되지는 않았다. 일을하다 문득 상우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라 상우에게 전화를 걸어보았고 둘은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은수는 상우에게 둘 사이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며 "오늘 같이 있을까?"라고 하지만 상우는 이제 은수와의 추억을 씻어낸 듯한 표정이다.
결국 둘은 서로 다른길을 걷게 되고 자신의 첫사랑이자 온마음을 쏟아낸 그녀를 떠나보낸다. 상우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에 서서 마음을 흘려보낸다. 옅은 미소와 함께 이젠 괜찮다는 듯 영화는 끝이 난다.
2. 겨울이 지나 서서히 다가오는 봄같은 사랑 그리고 사라지는 봄날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표현하는 사랑은 겨울에 만나 봄을 지나 꽃을 피우다 점점 더워지며 사라져 간다. 어느새 봄이 왔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린 상우와 은수, 상우는 순수하고 묵묵한 사랑을 표현한다면 은수는 노련미 있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처음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은수가 비가 오니 생각이나 먼저 전화를 했고 상우는 전화를 받고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후에 서로가 한밤을 보냈을때도 은수가 먼저 표현하였고 상우는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처음엔 은수가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상우가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이다가 상우의 아버지의 제안에 인사 들리러 가자는 말을 하고 난 이후에 은수는 조금씩 상우를 밀어낸다. 이후에 그려지는 장면에선 상우가 멀어져 가는 은수에게 적극적이다. 작중 은수는 결혼에 실패해 본 경험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관계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상우는 받지 않는 전화를 하기도 하고 은수는 그런 상우의 적극적인 행동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사랑을 할수록 삶에 지쳐있고 우울해하던 은수는 점점 더 생기가 돋고 활발해진다. 반면 상우의 삶은 행복하지만 기다리고 직접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영화의 갈등이 시작되고 나서야 은수는 상우를 찾아온다. 중간에 한번 상우를 찾아온 은수는 상우를 강아지 다루듯 노련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장면도 나온다.
서로 사랑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사랑 두 사랑의 대립은 결국 꽃이피던 화려한 봄이 지나 여름으로 가듯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에 많은 관객의 호평을 받고 역사에 남을 명화가 되었다.
허진호 감독은 영화 내내 여백을 두며 계속 여운을 만들어 내는데 영화속 숨은 장치들을 찾아보면 화면이 꽉 차고 화려한 영화보다 소리의 빈 공간, 공간의 빈 공간, 대사의 빈 공간을 만들어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3. 봄날은 간다 무심히 도... 마치며
멜로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에는 배우 이영애가 나오기에 3번 정도 보았다. 시나리오를 통해 억지 신파나 눈물을 짜는 게 아니라 누구 하나 나쁜 역할 없이 서로 다른 마음을 현실적으로 표현했기에 손에 꼽는 영화가 되었다. 배우 유지태와 이영애의 인생연기를 만나고 싶다면 꼭 한번 봐두시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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