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칙왕은 규모가 크거나 압도적인 장면이 많거나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루어 져 있지 않다. 그냥 소소한 이웃들의 이야기 처럼 큰 문제나 심각함을 들어내기 보단 우리 내면의 숨어있는 작은 소망이나 불만들을 대호(송강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 시켜준다. 재밌지만 씁쓸함을 남기는 블랙코미디 영화 반칙왕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1. 마스크 안의 또 다른 나의 이야기, 반칙왕 줄거리
주인공 대호(송강호)는 소심하고 순진한 은행원이다. 좋아하는 동료가 있지만 말 한번 붙여보지도 못하고 그런 대호만 보면 헤드락을 걸어 못살게 구는 부지점장이 있다. 집에선 아버지에게 구박받기 일수고 삶이 단조롭고 지루하던 차에 우연히 장칠삼 프로레스링 체육관을 보게 된다. "헤드락은 어떻게 풀어요?"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기술을 배우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표정도 행동도 하나둘씩 변하기 시작한다. 어릴적 좋아하던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동료직원에게 고백했다 퇴짜도 맞고 애초에 반칙선수로 키우려고 마음 먹은 관장에 의해 링에도 오른다.
어릴적 보아왔던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어떨결에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챔피언 유비호와의 대전이 잡히며 관장은 대호에게 반칙을 보여주고 패배 할 것을 주문한다. 대호는 말을 듣지않고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며 비등하게 싸우다 마스크가 찢어지고 결국 더블케이오로 경기가 끝난다. 현실로 돌아와 부지점장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결국 미끄러지며 실패하고 영화는 다시 힘차게 출근하는 대호의 모습을 비춰주며 끝이 난다.
2. 힘을 숨긴 회사원, 아니 불만을 삼켰던 우리 이야기
대호는 처음부터 힘을 감추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힘도 이겨낼 마음도 부족했지만 딱 한가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줄 알았고 노력하며 즐길 줄 알았다. 다 무너져 가는 프로레슬링 체육관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어릴적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 처럼 타이거 마스크를 쓰며 수줍고 소심한 자신을 감추려 했다. 물론 현실은 상상처럼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변화되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평범한 영화였다면 마스크를 쓰는 순간 없던 힘이 솓아나고 정의롭고 강한 나로 바뀌어야 하지만 마스크 하나로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마스크 안에 숨은 주인공을 처량하게 비춰준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썼던 마스크로 인해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아이러니는 영화속에 숨겨진 메세지 같다.
자신이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어 화려하게 기술을 걸고 상대를 ko시키며 경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또 좋아하는 직원에게 응원을 받으며 멋져진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링에 오르지만 결국은 반칙만 하는 캐릭터가 되버린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상상을 하며 출근을 하지만 결국은 회사에 속한 기계속 부품같고 시키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어 링에 오르지만 링위에서도 시나리오 대로 합이 맞춰진 대로만 해야하는 현실에 다시 부딪힌다.
데뷔전에서 가짜 포크로 상대를 찍어야 했지만 실수로 인해 진짜 포크로 상대방을 찌르고 피가 분수처럼 솓구치자 사람들은 열광한다. 주인공이 갈고닦은 기술따위 보단 가학적이고 재미만을 쫒는다. 회사에선 나의 열정과 각오보단 눈에 보여지는 결과들에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반칙 캐릭터가 싫은 주인공보다 반칙을 잘하고 재밌게 하는 대호에게 더 열광한다.
데뷔전을 계기로 대호는 챔피언과 붙게되고 적당한 타이밍에 져주라고 지시를 받지만 듣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유롭고 싶어하던 링위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뽐내본다. 지시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경기를 해나가지만 챔피언에게는 쉽지가 않았다. 결국 자신을 감추고 숨어왔던 마스크가 찢어지고 그 안에 피를 머금으며 끝까지 싸우려는 대호의 얼굴이 화면을 채운다. 찢어진 마스크 안에는 소심하고 숨으려고만 하는 주인공은 이제 없다. 이겨낸 얼굴만이 남아있다.
3. 해방감을 위한 영화 그리고 짧은 토막들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영화라고 하기엔 주인공 대호의 모습이 너무 처절하게 바닥을 긴다. 물론 영화가 개봉한 시대상으로는 부하직원에게 시도때도 없이 헤드락을 거는데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누군가 폭행으로 신고를 하고 뉴스에 나올 이야기 이다. 그냥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지질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뿐이다. 직장에서와는 다르게 체육관에서와 링위에서 비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 자유롭고 즐거운 어린아이 처럼 보인다. 로프를 이용하여 비상하고 드롭킥을 날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참고있을뿐 자신의 무대에선 너무 즐거운 모습이다.
현실의 링위에서 참고있다면 우리도 언젠간 우리만의 무대나 링위에선 저렇게 자유로울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감추고 벗어나기 위해 썻던 마스크가 찢어지고 그제서야 숨겨왔던 나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젠 마스크따윈 안중에도 없이 피를 흘리고 끝까지 싸우던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이 길게 여운이 남는다.
코믹의 장인정도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재밌는 장면들이 계속 쏟아진다. 송강호의 젊은 모습을 볼수있는 몇 안되는 영화이다. 달콤한 인생이후 김지운감독의 영화속 미장센들은 매우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그나마 반칙왕 에서는 좀 더 따뜻하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다. 마치 코믹 만화같은 느낌처럼 대놓고 웃기려 하기 보단 천천히 흐름을 따라가며 흥미를 유발하고 가벼운 웃음을 주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 대호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도 있는데 한일은행에서 일하시던 백종호씨가 그 주인공이다. 레슬링스타 김일의 계좌예치를 위해 레슬링에 입문하게 되었고 현재는 은퇴하셨다. 또 이 영화로 인해 인기가 시들어 가던 레슬링에 관심도가 잠깐 올라가기도 했었다. 실제로 이왕표선수가 감수를 맡고 노지심 선수가 출연도 하였다.
영화속 주인공 처럼 살순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작게나마 해소 할수있는 감정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김지운감독의 요즘 영화와는 많이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으니 안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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