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1999년작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투캅스로 화제를 모은 안성기, 박중훈을 캐스팅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인해 감독 또한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세련된 미장, 스타일리시한 연출방식 등 '한국의 왕가위'라는 수식어를 가져다준 영화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1. 짧은 줄거리, 정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비가 내리고 비지스의 holyday가 흐르며 영화는 장성민(안성기)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한 조직의 두목을 살해하며 시작된다. 우영민(박중훈), 김동석(장동건) 두 형사는 끈질기고 집념 어린 수사를 진행하며 점점 장성민에게 다가가고 추격 중 김동석과 장성민은 열차에서 만나 몸싸움을 벌이다 김형사가 크게 다친다. 이에 우형사는 혼자서라도 장성민을 추격해 폐광에서 싸우지만 힘에 밀려 포기하려는 순간 경찰의 장성민을 둘러싸면서 잡히고 만다.
이렇게 줄거리를 매우 많이 축약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이 영화가 인정을 받고 유명해진 것은 감독 특유의 만화 같은 연출기법과 음악, 영화의 리듬감, 미장센이다. 집념 어린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했던 감독은 영화 내내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우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계산적이 냉정한 수사보단 말 그대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범인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석 형사로 연기한 장동건을 통해 우형사보다 젊고 많이 배웠고 차분하며 냉철한 현대의 형사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선한 이미지에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 안성기를 냉철하고 잔인한 악역 장성민으로 연출하며 관객들에게 섬뜩함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 중에서 안성기는 범죄를 저지를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으며 두 형사들과 첫 대면 시 애인과 식사 중인 자리에서도 가위를 몰래 움켜쥐는 섬뜩한 모습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폐광 격투씬에서도 우형사를 앞도 하는 힘과 실력을 보여주며 강력한 악역과 끝까지 쫒는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선한 이미지에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롱런하던 안성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코믹연기 위주로 인정을 받던 박중훈의 연기력을 다시 보게 되는 영화가 되었다. 비록 비중은 좀 적지만 장동건도 이 영화를 통해 이전 작품들의 흥행실패와 연기력논란을 조금 수 그러 들게 하였다.
2. 오래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세련된 영화
'남자는 괴로워' 같은 드라마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같은 로맨틱 코메디물로 완전 흥행에 성공한 감독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평이 좋았던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제작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전작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투자를 받지 못해 힘들어하던 차에 태원엔터테인먼트를 설득한 끝에 영화는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위해 1년여간 강력계형사들과 숙식을 하며 그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여 각본에 녹여냈다. 이명세 감독은 관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낼 만큼 미장센이 훌륭한 감독이었는데 시나리오가 다소 약하단 평이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감독이 장인이 된 것 같다.
장성민의 첫 등장씬 부터 압도적이었는데 거친 비가 내리는 사이를 목표만 바라보며 전진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화면이 갈라지며 칼로 목표를 가르는 모습과 우산과 피해자가 계단에서 나뒹구는 모습이 비치는데 음악과 함께 보고 있자면 정말 '멋'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지금의 영화들처럼 화려하고 합이 잘 맞춰진 액션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앞으로 뻗는 주먹질과 바닥에 나뒹구는 격투씬 밖에 없지만 감독의 만화 같은 연출덕에 보는 내내 긴장감을 갖고 보게 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마지막 격투씬은 이후에 나온 많은 영화들에서 패러디 되었으며 1:1로 크로스카운터 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매트릭스3 에서 흡사한 장면이 나와 작은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원래 3부작으로 구성되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1편 추적에 해당되고 '신창원 탈옥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2편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하려 했는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제작이 되어 무산되었고 3부작은 '형사:dualist'로 제작되었다. 후에 감독 본인은 형사는 3부작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형사 또한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장면들이 많아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물론 스토리가 그렇게 재밌지는 않지만 이명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보고 있자면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3. 마치며 : 다시 돌아와요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12살 때 '남자는 괴로워'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보게 되었다. 국민학교 5학년 밖에 안된 아이가 어른들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냥 틀어놓고 누워서 시간 때우는 정도였는데 재미있던 건 어른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의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라던가, 갑자기 죽고 직장에 나타나 바라보는 모습이라던가, 영화인데 연극을 보는 듯 한 세트 같은 모습들은 내용은 이해를 못 하지만 확실히 재미있었다. 후에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란 것을 알았을 때 그냥 그럴만하다는 느낌이었다.
몽상가적이고 고차원의 예술을 지향하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가 흥행하느냐 마느냐, 관객이 좋아하느냐 마느냐, 또 이해를 하느냐? 보단 자신이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우선이고 그리고 싶은 장면이 우선인 영화와 감독들이 넘치는 시대였다. 그래도 이명세 감독님의 스타일은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보고 싶고 기다려지게 만든다.
JTBC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것이 마지막인데 여전히 영화를 위한 열정적인 모습에 역시 좋아하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모르지만 단 1편이라도 더 찍어 주셨으면 흥행을 떠나 기꺼이 극장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돌아와 주세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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