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멜로 영화 대표작 중에 몇 가지를 골라본다고 하면 편지를 본 사람들은 반드시 고를 것이란 믿음이 있다. 당시 최고의 배우 최진실과 충무로의 대형신인 박신양 주연으로 스토리에 반전이나 특별한 장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영화에 집중하게 되고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는 쉬운 영화이다.
1. 짧은 줄거리
기억속에 처음 접한 멜로영화다 보니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두르다 지갑을 떨어트린 정인(최진실), 그 지갑을 발견하고 정인을 부르지만 듣지 못한 여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기차를 따라가는 임업연구원 환유(박신양), 기억에 남은 건 당시 기차를 타고나면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에 구멍을 내어주는데 정인은 지갑을 찾아보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자 난감해하고 있을 때 기차 창 너머 택시창문밖에 몸을 던져 소리를 지르는 환유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지갑 돌려주려고 택시를 타고 기차를 쫒다니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마 정인에게 첫눈에 반한 것을 짧게 줄이기 위해 그리 하였던 것 같다. 유학길을 포기하고 정인과의 결혼을 택한 환유, 디즈니의 공주처럼 화려하거나 멋진 배경과 장면들이 나오는 결혼 생활은 아니지만 아침고요 수목원을 배경으로 둘의 서정적이고 숲과 나무 같은 결혼 생활이 이어진다.
"정인에게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제나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영화의 중심을 잡고있으며 관통하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처럼 환유는 그늘이 드리운 나무처럼 최선을 다해 정인을 사랑한다. 아름다움 뒤에 커다란 슬픔이 다가오고 환유는 뇌종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환유는 그렇게 정인의 곁을 떠나고 정인은 삶을 포기하듯 모든 것이 멈춘 채로 환유를 추억한다. 그런 그녀 앞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게 된다. 차표를 돌려주기 위해 돌아가지 않았다면 정인을 혼자 남겨두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와 함께 걱정 섞인 편지를 보며 정인은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갖게 되고 둘의 아이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환유의 비디오테이프로 된 마지막 편지를 받게 된 정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배우 박신양의 연기에 감독을 제외한 모든 스텦들이 눈물을 흘리며 촬영에 임했다는 장면이다. 25년 전에 봤던 영화지만 한국영화상 가장 슬픈 장면으로 기억된다. 남겨진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환유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 25년이 지났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편지
예전에 멜로 영화를 표현하는 것 중에 '최루성 멜로'라는 단어가 있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루탄을 맞게 되면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눈물, 콧물 흘리게 하는 영화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조합이다. 대놓고 작정하고 관객을 울리겠다는 뜻의 거부감 있는 영화는 아니었고 전개가 자연스럽고 깊게 몰입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와 복선들이 가득 채운 영화로 기억한다. 죽음 앞에서도 남겨진 사람을 위해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훗날 여러 예능과 드라마에 좋은 소재들이 되어 주었다. 마지막 환유의 영상편지를 위해 달려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최진실의 대사로 잘 갈무리하여 전체적인 평과 느낌이 매우 좋은 영화였다.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처음 본 배우 박신양의 연기는 어린 나이에도 충격이었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화면밖을 찢고 나올듯한 대사전달력 요즘 말하는 '댐핑'이 뛰어난 배우 같았다. 표정하나 눈빛하나 자연스럽고 정인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고 최근엔 화가가 된 화가 난 박신양 배우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후에 영화나 드라마 할 것 없이 종횡무진하며 흥행 주도하고 국민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고 지금은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치게 된다.
박신양은 이 영화에 들어가며 진심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최진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최진실에게 전하는 편지를 작성하며 호흡을 위해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을 지키고 의논하며 파트너십을 유지가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최진실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지금의 박신양 같은 믿고 보는 배우의 위치였다. 지금은 진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녀의 연기와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편지를 본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가 깊게 남아 박신양을 주로 기억하곤 하지만 최진실이 있었기에 박신양이 빛날 수 있었다고 본다. 잘 던지는 사람과 잘 받는 사람의 모습이랄까? 영화 초반부 정인의 모습에선 순수하고 사랑스러움을 잘 표현하였고 후반부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한 아픔과 다시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남겨진 자의 모습을 담백하게 연기했다고 볼 수 있다. 최진실의 연기를 볼 때마다 과함도 없고 덜함도 없는 조절을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생전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최진실은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치 연기가 아닌 우리의 실제 사연 같은 느낌을 주게 만든다.
3. 마치며
처음으로 본 기억이 나는 영화는 무엇이냐고 누구 묻는다면 당연히 이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액션, 스릴러 같은 볼거리가 많은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운들이 아직 남아있기에 명작이라 칭할 만하다. 요즘같이 다양한 갈등과 장치들이 많은 영화보다 수채화처럼 그려낸 이 영화를 한편 보며 기분전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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